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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새벽 구청 앞 길 늘 지나다니던 퇴근길은 시끌벅적한 술집 거리이다. 행인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담배 피는 사람, 은근히 끊이지 않고 앞뒤로 들어오는 자동차, 아슬아슬하게 비켜다니는 오토바이들을 피해 늘 미니게임 하듯이 걷는 곳이라 다른 생각이 들 여유가 없다.오늘은 다른 버스를 타고 다른 정류장에서 내렸다. 좀처럼 타지 않는 버스라서 반 년동안 잊고 있었지만 이 위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약 12시간 전 내가 택시를 잡은 그 위치였다. 밤 늦은 시간이라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량도 적고 슬슬 가게 불빛도 하나 둘 꺼지고 있어서 그날 새벽이 떠올랐다. 창문 너머로 그 위치가 눈에 스쳐 지나가자 또 제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왔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 걸었다. 걸으면서 드는 생각은 썩 좋지가 .. 2026. 5. 18.
이디스 워튼 - 「여름」을 읽고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넘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 특히 현재 나 같은 결혼 적령기 여성들에게 여전히 깊은 공감과 고뇌를 안겨주는 소설이다.재작년, 고등학교 동창이 결혼한 이후 즈음부터 결혼과 출산에 대해 굉장히 고민중이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어디서 상대를 찾는가, 아이를 낳는다면 더 늙기 전에 서둘러 결혼을 해야 할 것인가, 빠른 만남을 위해 눈을 낮춰야 하는가, 그렇게 만난 상대와 진실된 사랑을 할 수 있는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못다 이룬 내 꿈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아이를 낳고 싶은가?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고르자면 낳고 싶다는 쪽이다.이유는 이러하다. 많고 많은 생물종 중에 포유류 암컷으로 태어났는데, 남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임신, 출산 능력을.. 2026. 5. 7.
위국일기를 보며 최근 라프텔에서 챙겨보고 있는 올해 1분기 신작 애니메이션이다.아버지 돌아가신 지 4개월쯤 된 사람이 보니까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은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볼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주인공은 아직 미성년자. 독립한 서른 살 딸이 부모님 중 한 분만 돌아가셨는데도 이렇게 매일 같이 울고 슬퍼하는데 이 어린 소녀 아사는 얼마나 그 슬픔이 크고 깊을까. 상을 당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는 실감이 안 나고 별 생각 안 든다. 나도 1-2개월 쯤 지날 때까지는 이래도 되나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큰 슬픔이 밀려오지는 않았다. 아사가 그랬다. 태연하게 일상 생활하고, 스스로 부모님을 언급할 때에도 눈물 흘리지 않는다.그 기간이 지나면 슬슬 빈 자리가 크게 다가온다. 당연하게 있었던 존재가 없어서 생기는 허전함이 느껴진다.. 2026. 2. 28.
단상들 요즘 사람들은 누가 조금만 잘못하거나 트집 잡힐 일이 생기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연예인들을 보면 특히 잘 느껴진다. 범법을 저지른 게 아니어도 자그마한 흠이라도 발견되면 그냥 먹잇감이 된다.그러는 당신들은 일평생 살아오면서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는가. 나는 부끄럽게 살아도 티비에 나오는 당신들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걸까. 사실 나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잘못에 대한 처벌의 강도가 낮은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음주운전을 해도 형량이 낮고, 학폭을 저질러도 기껏해야 정학이나 강전 당하는 벌이 피해자가 받은 상처에 비해서 너무 작은 것이겠지.그럼 처벌의 강도가 높아진다면 정해진 죗값을 모두 치르고 나온 사람들을 대중이 과연 용서할까?글쎄. 사실 그냥 샌드백이 필요해서 때릴 대상 찾아서 때리는.. 2026. 2. 14.
귀멸의 칼날 스토리 다시 쓰기 난 귀칼을 안 좋아한다. 오히려 싫어한다.싫어하는 이유는 이미 글로 써 놓은 바 있으니 다시 정리하지는 않겠다. >>귀칼 비판글 가장 큰 이유 두 가지가 바로 '서사를 푸는 방식'과 '평면적인 캐릭터'인데,이 두 가지를 내 입맛대로 보완하여 몇몇 캐릭터들의 서사를 다시 써보고자 한다.친구들이랑 잡담하면서 만든 내용이지만 그냥 썩히기 아까워서 기록해놓는다. 렌고쿠더보기내가 작중에서 아카자와 더불어 가장 아까워하는 캐릭터이다. 귀칼 비판글에서도 써놨듯이 렌고쿠 또한 너무 마음이 올곧고 단단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휘어지지도 않을 정도로 너무 올곧고 단단하면 오히려 잘 부러지는 법. 렌고쿠는 한번 부러졌어야 훨씬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했을 것이다.아카자의 꾀임에 넘어가서, 혹은 넘어갈락말락.. 2025. 8. 30.
오가타 햐쿠노스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골든카무이, 정말 오랜만에 흠잡을 데 없는 좋은 작품을 읽어서 요즘 너무 기분이 좋다. 나이 들어서 옛날 같이 불타오르는 덕질은 못할 줄 알았는데 좋은 작품을 만나면 다시 불타오를 수 있는 거였구나.그 중 오가타가 내 안의 오타쿠 자아를 다시 부활시켰다. 난 오가타를 왜 좋아하는가. 왜 오가타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가. (이하 스포ㅇ)외모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흔히 일본 만화에서 묘사되는 그런 미남은 아니니까. 솔직히 골카 안 본 사람이 보면 그냥 수염난 이집트 고대벽화남일 뿐이다. 그치만 골카를 읽다 보면 오가타는 굉장한 미남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그 눈. 무서워보이긴 해도 아이라인 그린 것마냥 짙은 눈, 큰 동공, 길게 빠진 눈꼬리 혹은 속눈썹 묘사가 미남이 아니라면 가질 수 없는 .. 2025.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