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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국일기를 보며

by 행복한덕후 2026. 2. 28.

가족의 죽음을 실감하며 우는 아사를 조용히 안아주는 마키오

 

최근 라프텔에서 챙겨보고 있는 올해 1분기 신작 애니메이션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4개월쯤 된 사람이 보니까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은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볼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주인공은 아직 미성년자. 독립한 서른 살 딸이 부모님 중 한 분만 돌아가셨는데도 이렇게 매일 같이 울고 슬퍼하는데 이 어린 소녀 아사는 얼마나 그 슬픔이 크고 깊을까.

 


상을 당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는 실감이 안 나고 별 생각 안 든다. 나도 1-2개월 쯤 지날 때까지는 이래도 되나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큰 슬픔이 밀려오지는 않았다. 아사가 그랬다. 태연하게 일상 생활하고, 스스로 부모님을 언급할 때에도 눈물 흘리지 않는다.

그 기간이 지나면 슬슬 빈 자리가 크게 다가온다. 당연하게 있었던 존재가 없어서 생기는 허전함이 느껴진다. 나는 남은 가족이 있지만 아사는 그마저도 없어서 외로움까지 추가로 느꼈겠지.

허전함에서 슬픔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족의 죽음이 이제야 실감이 나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이따금 슬픔이 제어할 수 없게 터져나온다. 출근 준비하다가, 회사에서 일하다가, 퇴근하고 옷 갈아입다가. 그냥 정말 아무 연관도 없는 상황에서 문득문득 생각나고, 조금이라도 연상되는 상황이 생기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다.

8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사와 함께 엉엉 소리내며 울었다. 마키오의 소설을 읽고 아사가 울고, 그런 위국일기를 보며 내가 울었다. 아사와 나의 슬픔은 아무도 이해 못할 터라 생각했는데. 마키오의 소설은, 위국일기는 어쩜 이렇게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의 허전함과 슬픔을 잘 묘사하여 내 마음을 건드리는 걸까. 작중에서 마키오는 소중한 사람이 죽은 경험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에 준하는 경험을 했으니까 아사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위국일기 작가도 아마 그에 준하는 경험을 했겠지. 사실 가족상 이후 벌어지는 일과 감정을 이렇게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보면 동일한 일을 매우 가까이서 겪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까 이렇게 남에게 큰 위로를 주는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겠지. 난 요즘 위국일기를 보며 위로를 얻는다.

2-3일에 한 번 꼴로 자취방에서 아침이며 밤이며 울고 지내는 데도 이 슬픔을 남 앞에서 공유하기 겁나서 혼자만 삭이고 있었다. 말했듯이 이 슬픔은 타인이 이해 못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타인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나누려고 시도해봤자 분위기만 가라앉히고 상대방이 할 말 없게 되는 상황이 생기거나, 더 최악의 경우 그 타인이 어설프게 위로해주려다가 내가 듣기 싫은 말을 해버릴 지도 몰라서 그냥 애초에 나누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는 했나보다. 위국일기는 알아주는구나. 아사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위로가 되었다.

 

작중에서 마키오는 어느 누구도 절대 나하고 똑같이 슬퍼하지는 않을 테니까 누구와도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마키오도 나누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인 앞에서 입밖으로 꺼내지만 않았을 뿐이지 글로 쓰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글을 보고 아사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가. 이걸로 마키오와 아사는 슬픔을 나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같은 종류의 슬픔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내가 슬픈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 노래를 만든 사람과 슬픔을 나눈 것이다. 요 근래 위국일기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린 것도 위국일기 작가와 슬픔을 나눈 것이다.

같은 일을 겪어도 저마다 느끼는 슬픔은 다르므로 타인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면서 슬픔을 나누려 들면 서로 아무리 슬퍼도 그 슬픔이 백퍼센트 공명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슬픔을 마음 속에 저장해놨다가 머릿속에서 보기 좋게 빚어서 소설로, 노래로, 만화로 내놓는다면 면대면으로 만나 나누는 슬픔보다 오히려 공명하기 좋지 않을까.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나누는 슬픔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는 작가대로, 나는 나대로 슬퍼할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슬퍼하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