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6. 수정
반년 전 한번 썼던 글이지만 그새 여러 작품을 추가적으로 더 봤기 때문에 최애캐가 몇번이고 바뀌었다. 그 캐릭터들까지 추가하여 15여 년 간의 덕질을 기반으로 다시 쓰는 남캐 취향 분석 글이다. (각 작품들 스포 주의)
1. 강해 보이지만 정신에 결함이 있어 누구보다도 멘탈이 약해 보듬어줄 필요가 있는 악역
다카스기는 처음 만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꾸준히 좋아하는 캐릭터다. 은혼을 한참 좋아할 땐 거의 미쳐있었고, 지금도 은은하게 좋아하는 편이다. 외모부터 퇴폐섹시 계열인게 발리기도 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어릴 적 스승님에게 지독하게 얽매여 있고 그 점 때문에 정신이 심히 병들어있다는 점, 그리고 옛 친구들과도 지독하게 얽혀있는 그 파탄난 인간관계까지 정말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점 투성이다. 마지막에 긴토키와 긍정적인 교류가 있기 전까지는 그렇게 처량하고 외로울 수가 없었다. 고독한 맹수 같았달까.

문스독에서 아쿠가 나올 때면 계속 다카스기가 생각났다. 스승격인 다자이에게 지독하게 얽매여 있고 그 뒤틀린 집착 때문에 심하게 폭력적인 면이며 파탄난 인간관계까지 유사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뒤늦게 주인공 편에 서 갱생하나 싶었지만 역시 그동안 저질러 온 악행이 용서받을 수 있을 정도를 넘었기에 합당한 벌을 받는다는 것까지도. 다만 이미 쓰레기 어른으로 한참 살아온 다카스기에 비해 아쿠는 아직 어려서 그런가 좀 더 순수하고 귀염성 있다. 그저 애정결핍 소년...
앞으로 결말이 어떻게 맺어질지는 모르겠다만 개인적으로 아쿠가 사망 직전 다자이에게 크게 인정받고 만족한다는 얼굴로 장렬하게 죽는 엔딩이면 좋겠다. 다자이에게 인정 못 받고 매번 열등감을 표출하는게 안쓰럽기 그지 없는데 적어도 죽기 전에는 그 한을 풀어줬으면 한다. (하지만 명백한 악인이기 때문에 죽음으로써 심판 받아야 마땅하다.)

라이너의 매력은 저 우락부락한 외모에 그렇지 못한 멘탈을 갖고 있다는 것. 말 그대로 정신병을 갖고 있다는 게, 그리고 그 멘탈을 케어해 줄 사람이 없다는게 라이너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참 좋았다. 절정은 자살시도 장면이었다. 저렇게 남자답게 생긴 사람이 저렇게까지 무너지는 모습이 참 볼만했다. 정신적 약점을 드러내는 남자를 현실에서는 물론이요 여타 작품에서도 보기 힘들어서인가, 라이너처럼 나약하기 그지없으며 그것을 독자에게 다 보여주는 남자는 여자 입장에서, 최소한 내 입장에서 그렇게 짜릿할 수 없었다. 특히 4기 초반은 정말 매 등장마다 표정이 음울하고 자살시도까지 하는게, 엿보면 안될 남자의 나약함을 엿보는 느낌이었다.

게토가 엇나간 이후로는 그나마 그의 주술사 가족들 덕분에 멘탈을 유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을 스스로 등지며 자발적 아싸의 길을 걸어온 다카스기나 아쿠타가와는 다르게 살갑게 지내는 그의 가족들이 있었기에. 그래서 위의 캐릭터들만큼 멘탈이 불안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그 옛날 학생 시절 흔들리던 정신을 보듬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1번 부류의 캐릭터는 확실하며, 게토와 대등한 자리에서 진심으로 게토를 이해한 자는 결국 없었다고 본다. 아주 고독하게 살다 가지 않았을까.
(위의 다른 캐릭터들은 악인이 된 서사가 충분히 납득 가능하지만 솔직히 게토의 사연은 별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강자가 약자를 돕는 게 마땅하다는 정론은 나도 동의하던 바라 그 시절 게토도 참 좋아했는데, 거기서 약자를 몰살하겠다는 사상으로 탈선한건 너무 비약이 심하지 않나 싶다.)
2. 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하고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갖췄으며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조력자

정대만이 농구에 최선을 다하고 실력도 갖춘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란 무얼 말하는가? 또래답게 방황하던 시절을 지녔으며 그 때문에 체력도 후달리고 작중 수시로 하남자스럽게 후배에게 열폭하고 놀림받기도 하는 그 모습을 말한다. 온갖 명대사를 만들어낸 캐릭터이지만 그런 멋진 모습 밖에 없다면 이렇게 작품 내 인기 1위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멋지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도 함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갭을 모에 요소로서 소비하는 오타쿠들도 존재하고, 방황을 딛고 일어선 것에 초점을 두어 멋있다며 칭송하는 추종자들도 존재한다. 이 현실적이고 평범한 하남자 속성과 만화캐릭터답게 빛나는 상남자 속성을 모두 갖춘 성격이 나를 포함한 슬램덩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검사로서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 없다. 그럼 미츠루기의 인간적인 매력은 무엇인가? 재판에서는 그렇게 자신감 있고 무섭게 쏘아대는 차가운 검사님이지만, 법정 밖에서는 감정표현을 서툴러하고 사실은 나루호도를 매우 아끼는 마음 따뜻한 친구라는 점이다. 거기에 토노사맨 덕후, 지진을 무서워한다는 허술함은 오타쿠들이 갭 모에로 소비하기 딱 좋은 설정이다. 심지어 나루호도와 어릴적 친구였다는 점은 오타쿠들이 엮어 먹기 딱 좋은 서사 아닌가?
싸움은 탑티어에 들 정도로 실력있으며 죽음까지 무릅쓴 최고의 조력자였다. 작중 시점에서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적을 쓸어버리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과거 회상 장면 속 우는 모습이나 바보 같은 모습을 보면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일 뿐이라는 점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유형의 캐릭터는 보통 간지와 허술함을 균형있게 갖추고 있지만 바지는 상남자다운 모습을 마지막으로 요절해서 그런지 허술함보다는 간지에 더 초점이 맞춰진 캐릭터이다. 작중에서도 그렇고 독자들에게도 그렇고 죽음 이후로는 미화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바로를 조력자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바로의 의도와 다르게 이사기가 바로에게서 배운게 있으니까 조력자라고 치자.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건방질 정도로 하늘을 찌르지만 바로가 평소에 스스로 하는 훈련들을 생각하면 이 건방짐도 이해해줄 수 있다. 싸가지 없고 건방진 이 놈이 내 마음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이사기와 나기 셋이서 한 팀을 먹고 이 두 놈이 비협조적인 바로를 경기에서 철저하게 왕따시켰던 그 장면이다. 여기서 바로는 처음으로 절망감을 맛보았고, 그게 바로의 매력을 극대화시켰다. 이런 콧대 높은 캐릭터들은 주인공이 한번쯤 꺾어줘야 제맛이기 때문. 그 이후 바로의 행적들을 보면 메이드 기믹이 생기질 않나, 볼링 치는 사생활을 보여주질 않나, 뭔 염색을 하질 않나, 간지를 중화시킬 사사롭고 가벼운 요소들을 섞어주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자칭 킹 어쩌구 하는 천하의 그 바로도 친구들에게 놀림도 받고 그저 고삐리에 불과하다는 친근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3. 실력도 정신도 뛰어나며 더 이상 성장할 데가 없는 어른, '릿-빠나 오토나'

문스독을 본 계기는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오다사쿠 매드무비였다. 서사를 모르는 2D 캐릭터를 보고 첫눈에 반하기는 쉽지 않은데 오다사쿠는 보자마자 내 최애가 될 것이라는 걸 예감했다.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강한 실력과 올곧은 신념, 캐릭터에 대한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였음에도 왠지 그런 캐릭터일 것 같다는 생각이 팍 들었다. 작품을 봤더니 역시나였고.
애정의 여러 형태 중에서도 이런 류의 캐릭터는 동경의 감정이 가장 크다. 나도 저렇게 흠잡을 데 없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결말 마저 카우보이 비밥을 연상케 하는 사나이 그 자체였으며 다자이와의 진한 관계성으로 오타쿠들까지 챙겨준다.

진격거를 보고 리바이를 안 좋아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닐까? 위의 오다사쿠 같은 경우 과거에 대한 서사를 몰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저렇게 무결점의 성숙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매우 판타지적인데, 리바이는 온갖 더럽고 공포스러운 개고생을 해왔다는 게 본작에 여과 없이 나오기 때문에 더욱 인간적이고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캐릭터의 인생이 낭만적이게 포장될 수 있는데도 리바이는 그런거 없이 휠체어 신세가 되어도 아등바등 살아남아서 같은 부류의 캐릭터들보다 더 인간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좋다. 고귀하고 간지나는 죽음? 그런건 없다. 살아남는 게 멋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사실 케이지는 이 3번 유형에 넣기엔 멘탈이 불안한 편이다. 작중 중반 이후에는 환영으로 고통스러워 했기 때문에. 1번 유형과 3번 유형의 중간 쯤 되려나. 처음에는 악인일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의심, 날티나는 언행 때문에 그닥 좋아하지 않았지만 본인도 힘들면서 있는 힘껏 강한 척하며 주인공을 보듬어주는 모습, 그리고 결국엔 주인공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줬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로 다가와 내 최애 자리를 차지했다. 개인적으로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하지만 왠지 이런 멋진 캐릭터는 가차없이 죽여버릴 것만 같지.

사이토야말로 '릿-빠나 오토나' 그 자체이다. '악즉참'이라는 신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킨다는게 매력의 큰 핵심. 미부의 늑대라는 별명도 위엄이 넘치고 그 명성이 세계관 내에서 자자하다.
언제나 간지를 잃지 않는 사람. 담배를 꼬나물고 아돌 자세를 취하는 게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다. 결정적으로 반한 순간은 시시오와의 최종 결투 후 무너지는 건물 속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이때도 물론 여유롭게 담배를 태우는 게 멋있었지. 사이토에게서 느껴지는 상남자스러운 갖은 매력들은 여러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 중 으뜸은 '여유'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여유롭고 감정이 동요되지 않는 모습이 섹시함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