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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만화 및 애니 리뷰

by 행복한덕후 2024. 6. 4.

새벽의 연화

(최신화 스포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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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주인공이 여자일 뿐인 시대극 모험 만화인 줄 알았더니 순정만화였다. 20대 중반 넘어가기 시작하니까 싸우고 죽이는 소년만화보다 순정만화가 훨씬 재밌고 와닿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다. 무엇보다 남자주인공 학이 너무 내 취향으로 잘 생겼다는 점이 정주행 하는 데 한 몫 했다.

주인공 일행이 나라를 구하러 다니면서 여러 비밀들을 하나 둘 알게 되며 동시에 학연화 러브라인까지 진행된다. 모험물과 정치물의 성격도 띄고 있지만 이 만화의 정체성은 역시 로맨스다. 작가도 학연화 러브씬을 가장 잘 그리고 읽는 나도 러브씬이 가장 눈에 들어오고 기억에 남는다.

 

문제는 러브라인 외적인 내용이다. 우선 주인공 연화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 백성들을 고통에서 구한다는 신념? 공주로서 옳은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그 의지를 지속적으로 관철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을 연화가 제대로 생각해 봤으면 한다. 최소한 학 같은 주변인이라도 연화에게 왕 자리에 오를 것을 제안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수원이 그러고 있지만 수원의 뜻을 따라 연화가 왕좌에 오를 수는 없지 않나. 수원이 지목한 대로 연화가 왕이 된다면 수원의 의지를 이어 받는 꼴이 되는데 수원은 이 만화의 메인빌런지 않았는가?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나온다. 메인빌런이었던 수원을 작가가 필사적으로 포장하고 있다. 작가가 수원을 무진장 아끼나 본데, 그 때문에 내용이 산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이 만화의 발단을 수원의 반란으로 시작했는데 수원을 적으로 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수원을 시한부로 만들어 동정하게 해놓고 뜬금없이 제노를 빌런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다음 문제, 네 용이 쓸모 없어졌다고 이렇게 버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네 용이 단명할 운명인 걸 거스를 수 없다면 용들이 죽기 전에 만화를 끝내면 된다. 결말 이후는 독자들이 알아서 행복하게 상상할 거니까. 최신화에서 제노를 빌런으로 만들면서 나머지 용들을 리타이어 시킨 건 작가에게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용들은 연화 옆에서 평생 보좌관으로 살게 하던지 최소한 연화 곁을 떠나더라도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거나 모험이라도 보내야 한다. 제노의 고뇌를 표현하고 제노를 죽이고 싶은 거였다면 제노만 죽이면 되는데 왜 남은 세 용까지 건드린걸까. 얼마나 대단한 결말을 만들려고 용들을 없애버린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여학교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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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그림체가 내 취향이라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드디어 봤다. 전직 여학교 출신 여고생, 현직 학원 강사로서 난 이 만화의 재미를 두 배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포지션이 아닐까 싶다.

 

전직 여고생 입장에서 본 소감

종잡을 수 없는 대화의 흐름, 선생님 관찰 일기, 선생님 별명 짓기 등 내가 여고를 다니며 겪었던 일들이 그대로 구현되어 있어 추억에 젖어 볼 수도 있으며 사실 그냥 그 내용 자체로 웃기고 재밌다.

 

현직 선생님 입장에서 본 소감

학생들을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 동료 선생님과의 시시콜콜한 잡담, 직장인으로서 업무에 시달리는 모습, 예를 들면 시험 문제에 서술형을 많이 내서 뒤늦게 채점 걱정을 하며 후회하는 모습, 특히 학부모 면담을 하기 싫어하는 모습... 현재의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많이 놀랐다. 작중 주인공 선생님은 33살에 딸아이까지 있는 애아빠지만 20대 후반인 나도 이제 빼도박도 못하게 저들 같은 어른의 입장에 들어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한편 33살, 31살 먹은 아저씨들이 여고생들처럼 시덥잖은 대화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고등학생 시절이나 30대 시절이나 다를 거 크게 없구나 싶기도 하다.

 

동인녀의 눈에는 보이는 고바야시x호시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고바야시 선생님이 호시 선생님에게 관심이 있어 보인다. 내가 BL 필터를 끼고 봐서 그런걸까. 하지만 고바야시 선생님 시선 끝에 호시 선생님이 닿아 있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BL 만화를 그린 전적이 있더라. 작가도 조금 노리고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호시는 고바야시에게 아무런 마음 없는 게 당연하고 고바야시가 일방적으로 호시에게 관심을 보이는 관계가 좋다. 그래서 괜히 퇴근할 때 같이 술 마시자고 한다던가, 교무실에서도 별 거 아닌 일로 말을 건다던가. 그런 행동을 보는 것이 좋은 거다.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들끼리 친해보이면 괜히 친구들과 그 선생님들 사이에 대해 쑥덕쑥덕 얘기하곤 했었는데 이 만화 여학생들 중에도 분명 고바호시 관계성을 특별하게 볼 애가 있을 거라고 본다.

 

도로로

(스포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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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즈카 오사무 원작. 2019년 리메이크 애니로 감상했다. 이렇게 완성도 높은 애니를 본 게 얼마만인가. 흠 잡을 데가 거의 없는 작품이다. 알고보니 원작은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다소 촌스럽고 완성도도 떨어지는데, 리메이크를 정말 기깔나게 잘 했다.

햣키마루라는 캐릭터를 거의 재창조한 수준인데, 이 햣키마루가 그렇게 모에할 수가 없다. 요즘같이 대놓고 모에 속성 집어 넣은 양산형 설정놀음 캐릭터들보다 햣키마루가 훨씬 모에하다. 모에하다는 단어가 요즘 잘 쓰이지도 않는데 이 햣키마루는 모에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캐릭터다. 벙어리에 각종 감각도 없고 당연히 사회성도 없던, 생긴 것 마저 인형에 가까웠던 사람이 점점 감각을 되찾고 말귀를 알아듣고 의사표현을 하며 감정표현까지 하는 성장과정이 감동적이고 그 과정을 참 다양한 감정을 녹여서 표현했다. 통각을 되찾고 뜨거운 불을 밟는 햣키마루는 호기심을 갖고 이제 막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기 같았다. 청각을 되찾고 미오의 죽음에 슬퍼하며 폭주하는 햣키마루는 정말 마음 아팠다. 후각을 되찾고 꽃향기만 줄곧 맡는 햣키마루는 귀여웠고, 마지막에 시각을 되찾고 도로로에게 예쁘다 말해주는 햣키마루는 너무 설렜다.

 

도로로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다. 당돌한 어린이 캐릭터는 흔한데도 불구하고 도로로는 왜 이렇게 더 애착이 갈까. 햣키마루의 사회적 보호자이자 선생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게 귀여워서. 하지만 엄마 같은 사람들 품에 안겨서 어리광 부리는 모습은 영락 없는 애기라서. 힘 없는 애기지만 햣키마루에게 매번 구해지기만 하는 게 아니고 싸울 땐 확실히 도와주는 모습이 기특해서. 그리고 여자라서.

도로로가 애기에다 여자여서 난 정말 안심했다. 그냥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난 쇼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로로가 햣키마루 때문에 당황하거나 얼굴을 붉히는 등 햣키도로 커플로 엮을만 한 장면이 다소 존재했는데, 도로로가 남자애였으면 쇼타 넣은 BL을 원작에서 말아주는 꼴이 되어서 작품성도 해치고 나 같은 사람은 취향 타서 하차했을 지도 모른다. 도로로가 애기라는 점도 중요하다. 햣키마루가 팬티바람인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심지어 둘이 온천에서 목욕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도로로가 꼴에 여자라고 같이 목욕하기 부끄러워 했으면 보는 내가 다 부끄럽고 불편했을 거다. 다행히 도로로가 너무 애기라서 같이 팬티바람으로 입수하는 거 보고 안심했다.

하지만 결말에서 성장한 도로로를 보여줌으로써 미래 시점 햣키도로를 당당하게 연성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했다. 나도 로리 시절 그대로 햣키도로를 성애적으로 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성장한 도로로를 보여줘서 어찌나 안심했는지.

 

원작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설정만큼은 원작이 참 잘 만들었다. 귀신을 퇴치할 때마다 희생당했던 신체부위를 하나씩 되찾는다는 설정, 그리고 도로로라는 '순수한 아이' 동행자가 곁에 있다는 설정. 햣키마루 혼자 여행하는 만화였으면 재미도 없고 무겁기만 했을텐데 도로로 덕분에 어두운 작품 분위기 속에서도 가끔씩 귀여운 맛이 있었다. 동행자가 어른이었으면 새로 태어난 거나 다름 없는 햣키마루는 시작부터 세상의 떼가 묻었을텐데, 동행자가 도로로였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